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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1 커피 에세이,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 에그 2호

by Daisy_On 2020. 6. 1.

 

망원 모티프 커피바

 
내가 좋아하는 스탠딩 에그의 에그 2호님께서 망리단길에 카페 Motif Coffee bar (모티프 커피바)를 하고계신다.

책 판매도 하는 북카페이고, 여행 서적이 많이 있다.
기간을 정해놓고 콜라보 전시를 하기도 한다.

 

ABANG 전시
앨범으로 노래를 틀어주신다


인테리어도 너무 예쁘고 음악도 너무 좋다.

작년 겨울에는 책도 쓰셨다.

 

모티프 커피바 입구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이라는 제목의 커피 에세이.

주말에 엄청 오랜만에 모티프 커피바에 가서 책을 읽고왔는데, 가져갔던 책을 다 읽어서 카페에 있던 책을 보려던 중,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처음 출간됐을 때 읽어보려고 했다가 잊고 살았는데 이참에 읽어봐야지 하고 책을 집어들었다.

커피 에세이니까 책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따뜻한 라떼 한 잔도 또 주문했다.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에그 2호님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셨던 커피와 그 때의 사람들, 그 때의 분위기에 대해 적은 책이었다.

사진도 같이 있어서 그 때의 분위기를 같이 느끼기 더 좋았다.

"우리가 무미건조한 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그리고 내일을 다시 기대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언가에 깊은 애정을 쏟는 것, 조금만 더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추출'해내려는 노력이 아닐까요? 분명, 나의 수더분한 일상 속에도 분명 뭔가 의미가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것이 꼭 커피가 아니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 프롤로그

프롤로그부터 무언가 따뜻함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카페도 있었는데, 처음 나온 카페가 연희동 '매뉴팩트'였다.

대학원생 때 같은 과 친구가 추천해준 카페였는데 커피가 맛있어서 기억에 남는 카페였다.

학교랑 가까웠지만 길 건너까지 잘 안건너갔던 바쁜 대학원생이었던터라(ㅠㅠ) 몇 번 못가봐서 지금에야 아쉬움이 남는다.

원두를 사면 아메리카노도 한 잔씩 줬었는데 나중에 가서 원두라도 사와야겠다.

카페 이름이 기억이 안났었는데 이 책에 나와서 너무 반가웠다.

에그 2호님은 매뉴팩트의 플랫 화이트를 좋아하신다고 한다.

플랫 화이트가 에스프레소 샷 두 잔에 따뜻한 우유를 넣고 그 위에 아주 약간의 우유 거품을 올린 커피메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모티프 커피바에 플랫 화이트 메뉴가 따로 있진 않지만 책을 먼저 봤더라면 바리스타분한테 가능한 지 여쭤봤을텐데 살짝 아쉽다.

그래도 비슷한 카페라떼를 먹었으니 만족!

 

아는 카페가 두개나 나와서 반가웠다.

내가 아는 그 합정역 2번출구에 있는 레드 플랜트를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맞다면 지금의 2번 출구 자리로 이사가기 전부터 우리 연습실 근처 카페라 종종 커피를 마셨던 카페였다.

에그 2호님이 처음 합정 레드 플랜트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을 때,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1분만 더 있다가 드세요.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를 뜨거운 물에 섞는 거잖아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물과 에스프레소는 서로 다른 성분이라서, 서로에게 완벽히 섞이고 녹아들 시간이 필요해요. 그제야 진짜 아메리카노가 되죠."

그 분은 에그 2호님의 커피 선생님이 되었다.
모티프 커피바도 처음엔 레드 플랜트의 원두를 사용했지만 여러 원두를 맛보기 위해 옮겨다니며 본의아니게 에그 2호님은 커피선생님과 멀어졌다고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가 말한 아메리카노처럼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이 필요한 것일 텐데 나는 왜 그리 성급하게 그를 놓아버렸을까. 시간이 많이 흘러 언젠가 12월의 어느 늦은 밤 그 카페를 찾아간다면 그의 커피를 다시 마실 수 있을까? 나를 커피 애호가에서 바리스타로, 그리고 카페 주인으로 만들어준 그의 커피를 꼭 다시 마시고 싶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데, 에스프레소는 아직 엄두를 못내겠다.

'커피의 끝'이라고 하면 에스프레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에그 2호님은 '커피의 끝'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커피의 새로운 시작이라며, 로마에서 만난 에스프레소에 설탕 한스푼을 이야기한다.

에스프레소에 각설탕을 넣고 "설탕이 완전히 녹지 않도록" 티스푼으로 가볍게 저은 후 마시는 것.

"설탕의 단맛은 다른 맛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맛들까지도 모두 입안에서 더 풍부하게 살려내는 역할을 했다. 에스프레소가 목을 타고 넘어간 후에도 여전히 입안에 남은 다채로운 커피 향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여음처럼 풍성하고 길게 남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가장 사랑스러운 포인트다. 덜 녹은 채로 커피 잔 바닥에 남은 설탕. 에스프레소를 머금어 진하고 끈적한 갈색 시럽처럼 보이는 그 설탕을 티스푼으로 긁어서 입안에 넣으면 그 자체로 커피와 어울리는 훌륭한 디저트가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완벽한 커피가 있을까."

커피 맛을 정말 잘 표현하시는 것 같다.

이미 커피 2잔 마신 상태가 아니었으면 당장 에스프레소에 도전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겠지만, 결국 끝은 달콤하게 마무리되길.'

 

나는 산미가 없고 구수한 커피를 좋아하고, 프랜차이즈보다는 동네의 작은 카페를 더 좋아한다.

커피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차피 내가 마시는 커피, 내 입맛에만 맞으면 그만아닌가.

(모티프 커피바의 아메리카노는 약간 산미가 있었지만 깔끔하고 맛있었다.)

에그 2호님이 스위스 취리히에서 만난 작은 카페 'MAME'의 창문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The Best Coffee is The Coffee You Like.'

당신이 좋아하는 커피가 최고의 커피입니다.

커피는 맛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것처럼 누구와 함께인지, 분위기는 어떠한지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어디선가 좋은 음악이 흐를 때, 올해 첫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을 때... 똑같은 커피도 분명 훨씬 맛있게 느껴지니까"
이 날 커피가 유독 맛있었던 이유일까.

이 책에 소개된 연남동 '도깨비 커피집'의 '얼음 커피 우유'도 먹어보고싶고, 망원동 M1CT(망원시티)도 가보고싶다.

그리고 마지막 장, "with ? in ?" 에 물음표도 여기에 채워나가야겠다.

 

#1

with JY in 모티프 커피바

20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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