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고른 책.
서울에서 태어나 요코하마, 리스본, 상파울루, 오사카, 뉴욕, 도쿄에서 성장한 임경선 작가님의 산문집이다.
작가님은 10살 때 부모님과 1년간 리스본에서 살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현실적인 문제들로 지쳐갈때 쯤, 10살인 딸에게 리스본에서의 경험을 물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딸과 함께 리스본에 가기로 하고, 12일간의 리스본 생활에 대해 적은 책이다.
그 때의 사진도 같이 담겨있어 리스본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다.
호텔 예약을 위해 열심히 찾아보고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던 중,
결국 선택한 호텔은 초록색 외관을 가진 호텔.
다분히 사소한 이유가 합리적인 이유들을 이겨버렸다.
광장, 서점을 갔다가 찾은 카페 겸 레스토랑.
포르투갈의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가 생전 즐겨 찾았던 곳이다.
페소아는 생전에 단 한권의 시집 <메시지>만을 낸 무명 작가였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70여개의 다른 이름을 사용하여 3만여장의 시와 산문을 썼던 것이 밝혀졌다.
그가 정한 각각의 이름마다 다른 성장 배경, 교육 수준, 직업 등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다른 문체와 언어로 글을 썼기 때문에 전 세계 문학 연구자들이 끊임없이 매료되는 주제이다.
신기..
작가님이 리스본에 살았던 어렸을 적, 아버지와 친하게 지냈던 소진화 아저씨 부부도 찾아갔다.
아버지의 부고도 전하고, 옛날 얘기를 하며 추억팔이도 한다.
그 부부와 대화를 하면서 부모님과 리스본에 살던 시절, 부모님은 어떤 마음이었을 지 상상해본다.
아이들 교육문제나 노부모의 부양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상상일텐데, 실행으로 옮긴 용기가 존경스럽다.
어렸을 적 갔었던 해변가도 소진화 아저씨 부부의 도움으로 어딘지 알아내고 찾아간다.
에스트릴 해변과 긴초 해변.
긴초 해변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다시 나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준 택시 기사도 만났다.
최대한 빨리 보고 오겠다며 기사에게 조급하게 말하지만,
기사는 오늘은 쉬엄쉬엄 하고싶다며 해변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말한다.
여행지에서 이런 다정함을 만난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어렸을 적 다양한 외국 체류 경험 덕에 예민한 성장기를 보낸 작가는
그런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딸 윤서를 보며 자신의 정체성이 그 때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니 딸에게 자연스럽게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이 무리다.
이와 함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장이 나온다.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땐,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것을.
뭔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불만이 많아지고, 더 남을 비판하고, 오만해지는 것 같다.
아직 위대한 개츠비도 못읽어봤는데, 저 구절을 보고 읽어보고 싶어졌다.
대학교에 가서 딸 윤서와 함께 학식을 먹고, 카자 데 파두에 간다.
카자 데 파두는 파두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식당, 라이브 카페 같은 곳인 것 같다.
파두 공연이 시작되고, 파두를 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이라는 안내를 한다.
휴대폰이나 카메라의 플래시, 소리가 끼어들면 파두 고유의 분위기가 흩어지기 때문에 자제해달라는 부탁.
언젠가 리스본에 가게된다면, 카자 데 파두에 꼭 가보고싶다.
"리스본에서 보낸 시간들은 통제할 수 없는 그 당연한 사실을 우아하게 직시하고 받아들이기 위함이었다. 그래야만 나는 그들을 마음껏 그리워할 수가 있고, 그래야만 내가 그들을 놓아주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을 테니까. 소멸과 생성, 끝과 시작은 하나의 몸이고, 끝이 있기에 우리는 순간순간의 찬란함을 한껏 껴안을 수 있다. 혹은 나는 모종의 '의미'를 찾아 헤맸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부모 자식 관계로 만나게된 의미, 죽음이라는 결론이 이미 나와 있는데도 삶을 한껏 껴안고 가야 하는 의미, 상대와 나를 용서하는 일의 의미..." - <다정한 구원, p.256>
결국 죽음이라는 결론이 이미 나와있는데도 삶을 한껏 껴안고 가야하는 의미는,
사랑이다.
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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